2011년 10월 22일 토요일

투명성의 시대 (북곰 서평)

웹의 탄생은 세상의 많은 흐름을 혁명에 가깝게 변화시켜놨다. 그리고 이 변화는 제 스스로의 무게에 의해 가속도가 점점 붙어나가고 있어서 지금은 단지 과도기일 뿐일 텐데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핵심까지 파악하기는 커녕 자칫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차 알아채지 못한 채 흘려보내기 십상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 측면과 더불어 부정적 요소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수평의 네트워크가 이뤄낸 위키피디아와 같은 모범답안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플래시몹이 연출하는 것처럼 즉흥적으로 일시적인 지저귐(twitter)들일뿐 일관되거나 조직화할 힘을 갖기 못한 채 매우 급하게 흥미를 잃거나 다른 가십거리로 옮겨가기만을 반복하는 것이다. 잠깐의 시선이 머물 뿐 결코 심화되지도, 유지되지도 않는 것이다.

일회성으로 소비되는 관심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나마 새로운 이슈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유지되고 확대될 가능성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속도는 그러한 관심을 용납하지 않는다. 더 많은 정보가 제공되고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정보는 알 필요도 없고 의미도 없는 것들이어서 이러한 공격적인 양산 속에 숨어있는 의미 있는 사실은 오히려 찾기조차 힘들다. 게다가 요즘 유행하는 ‘나는 꼼수다’를 빌어 이야기하자면 지금 같은 시스템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슈로 물타기를 하기에 너무나 좋은 상황이다. 정치 커뮤니케이션은 이러한 기법을 아예 학문 수준에서 연구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데 만약 위키피디아와 같은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관리되는 방식으로 이러한 이슈들이 역사로서, 사전으로서 존재한다면 어떠한가. 이것이 어떤 특정 현상이나 사실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하나의 배경지식으로 얽혀져 있다면 실시간 검색어에서 벗어난다 할지라도 계속 지켜보는 이들이 존재함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위키리크스는 그래서 정치적인 전문 위키피디아로서 그 자체가 어떤 역할을 해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의 시대에 매우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내부정보 고발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외부인이 숨겨진 어떤 사실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양심에 입각한 고발은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는 관행 혹은 진실을 알려내고 올바른 방향으로 다잡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이익의 이면에서 늘 내부정보 고발자는 온갖 손실은 혼자 감수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여기에서 위키리크스는 또 하나의 강력한 기능을 발휘한다. 바로 정보제공자 보호가 그것이다. 이제 그들은 익명성을 다소나마 보장받을 수 있게 되고 그들이 고발하는 내용은 일회성으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설령 익명성이 훼손되더라도 모든 것을 잃지만은 않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빅 브라더의 행태로 볼 때 냅스터나 당나귀처럼 채널을 차단하는 방법을 여전히 유효하게 생각할 것이므로 위키리크스는 언젠가 이들처럼 우리의 과거가 되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2, 제3의 보다 강화된 p2p가 등장한 것 처럼 위키리크스의 가능성을 말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투명성의 확보이다.

반면 P2p에 의해 저작권 등 지적재산권의 문제가 야기되었던 것처럼 이 책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위키리크스도 아직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다분하다. 민주주의와 다수참여의 정치가 갖는 비효율성은 일단 제외하더라도 국가나 기업의 이익에 현저한 손실을 부여할 수도 있는 내용이거나 혹은 원작의 잔혹함이 제거되고 다소 미화되어 어린아이들에게 제공되는 그림형제의 동화처럼 조금은 가려지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는 것들 조차 단지 진실이라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공개해야만 하는가는 공개적으로 좀 더 논의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채널이 정보를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과연 그 정보가 진짜 사실인지 알지 못한 채 공개할 우려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렇지만 문제의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아예 발전을 못했다면 인류의 역사는 여전히 구석기시대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문제점은 명확하게 인식해서 수정하고 발전해나가는 방안을 마련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외치는 허울좋은 투명성과는 견줄 수 없는 진짜 참여가 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위키리크스에 관한 논문도 아니고 하나의 보고서일 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하지만 이 책의 내용에 제대로 공감하기 위해서는 9페이지에 걸쳐 소개된 20항목의 관련단체, 기관, 이슈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고, 주석만으로도 27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쉽고 재미있다고 말할 사람이 있다면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두껍지도 않고, 지질과 편집, 인쇄가 나쁘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10일내에 올려야 했던 서평만 아니었다면 한참 더 걸려서야 겨우 완독했을 것만 같은, 절대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없었던 책이다.  단순하게 음모론에 대한 호기심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무척 괴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모든 내용은 철저하게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기술하기 위해 공들인 기색이 역력하지만 일반 독자 입장에서 다소 괴로움이 될 것이라는 것쯤은 아예 처음 기획단계에서 배제된 요소인 것만 같다. 다른 독자를 위해 작은 팁을 드리자면 역자후기를 먼저 읽고 나서 본문으로 돌아오면 아마도 조금은 더 페이지를 넘기는 데에 힘이 덜 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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